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 연극론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 연극론

 

그로토프스키에게 있어 연극은 끊임없이 진지하게, 마지막 경건함을 다해, 그리고 자신을 완전히 바침으로써만 실천될 수 있는 삶의 형식이다. 여기서의 연극행위는 배우들에게 있어 자기발견의 제의, 즉 “새로운 형식의 미사”이다.

〖여기서 연극적 의식은 일종의 도발, 즉 대중의 생각을 공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도발이다. 다루어지는 대상은 우리 문명의 뿌리에 깊숙이 천착되어 있는 은밀하고도 중요한 내용물, 즉, 신화, 상징, 그리고 모티브 - 집단경험들이 누적된 것과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인간들의 상황들을 기호화한 것(원형)이다. 연출자는 영겁 이래 축적되어 온 가치들의 성전으로 뚫고 들어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고통스럽게 실험해보기 위해, 그 가치들을 신성시한 어두움으로부터 밝은 빛으로 끌어낸다.〗



『연극은 - 배우의 테크닉에 의해, 즉 유기체를 초월하는 배우의 기교 덕택에 - 통합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어떤 것을 위한 가능성, 즉 가면을 벗어던지기 위한 가능성, 참된 본질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즉, 육체적, 정신적 반응들의 총체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가능성은 교육적인 방법으로, 즉 그것이 요구하는 책임을 완전히 깨닫는 가운데 이용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오늘날 문명 사회의 인간을 위한 연극의 치료적 기능이 나타난다. 사실은 배우가 이러한 행동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배우는 이것을 오직 관객과의 만남 속에서 - 카메라맨이나 의상디자이너, 또는 가면디자이너를 통해 매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관객에게 대리적 행동을 보여주는 관객과 직접 접촉하는 개인적이고, 현재적인 만남 속에서만 행할 수 있다. 배우의 행동 - 미심쩍은 요소를 떼내고, 감춰져 있는 것을 발가벗겨 드러내고, 또 배우를 가두지 않고, 배우로부터 흘러나오는 - 은 관객에 대한 일종의 초대이다. 이런 행동은 두 사람 사이에서 가장 깊이 느껴지는 참된 사랑의 행위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이러한 ‘자신을 흘려보내기’에 대한 그저 유추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저 단순한 비교이다. 이러한 행동, 패러독스, 극단적 경우를 우리는 총체적 행동이라 부른다.

우리는 연극에서 - 무엇보다 연극에서 보여지는 명료하고 구체적인 표현 속에서 - 도발, 즉 배우가 자기자신에게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제기하는 도전의 장소를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연극을 통해 고정된 시각, 관습적인 느낌들, 그리고 행동방식들, 규범화된 판단들을 극복할 수 있을 때에만이 연극은 연극의 의미를 성취할 수 있게 된다 - 그러나 그것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되고, 현실을 경험하기 위해, 그리고 일상적 변명과 구실들을 포기하자마자 곧 빠지게 되는 완전한 무저항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감춰진 모습을 발가벗기고 그것에 몰두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 우리는 무어라 명명할 수는 없지만, 에로스와 카리타스가 똑같이 살아있는 그 무엇을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 내가 연극의 포기라 명명한 것으로 넘어갔을 때, 처음에는 너무나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첫째로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에 대한 일화나 사건, 이야기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내가 알고 있었단 것은 참여한 사람들의 선택은 완전히 서로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언론에게는 결코 능력이 아닌 상응하는 소질을 필요로 하는 실습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더 나아가 나는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하고, 이 어떤 것이 단계와 국면으로 일어나야 하지만 - 고정된 의식이라는 의미에서 - 제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의보다 더 단순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질의 분배, 요소들의 분배 - 가장 전형적인 의미에서 - 즉 공간, 물, 불 그리고 또한 시간의 흐름, 땅과의 관계를 타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인식과 같은 것들에 근거해야만 한다. 돌파구, 즉 이기심과 두려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존재한다. 바람, 나무, 땅, 불, 풀, 그리고 동물들과 연계되는 만남이 존재한다. 그리고 비상의 경험이 존재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든 은폐 행위를 단념한다. 그는 다른 존재들과 교류하기 위해 다시금 깨어난다. 내가 말하는 것은 특별한 만남들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어덯게 해서든 널리 보급될 것이고, 하나의 경험으로서 터무니없이 더 적은 것으로 남아 있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