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수기)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2024-08-07


연기가 안되서 너무 힘들 때가 있었어요. 그때 문득 생각해 봤죠.

나는 어제와 달라진게 없는데 왜 내 연기는 어제보다 나아지길 기대하는 걸까…


* 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 / 문대남 



♣ 고3 때 시작된 현실도피.


저는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매사에 급한게 없었어요. 그냥 물 흘러가듯 설렁설렁 사는 스타일이었죠. 게다가 사람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그러니까 제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많았어요. 사람 좋다는 말도 말이 들었구요. 성격이 이렇다보니 욕심도 많지 않았어요. 당연히 공부도 잘하지 않았구요. 그래서 고3 때는 연극영화과를 지원했어요. 그냥 공부는 적성이 아닌거 같고 어릴 때부터 노래하고 춤추는 거 좋아했으니까 연영과를 가는게 제일 맞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어떻게 되겠지’라는 긍정의 마인드로 설렁설렁 준비하다가 보기좋게 4년제는 다 떨어졌죠. 그래서 할 수 없이 경기도에 있는 전문대 뮤지컬과를 들어갔어요.


사실, 그때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재수를 한번 해보는게 어떠냐고 하셨는데 제가 싫다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서 제일 바보같은 선택 중에 하나였죠. 당시에는 ‘어디가서든 나만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어’라는 생각이었는데 솔직히는 그냥 재수할 자신이 없었어요. 빨리 대학에 가서 제가 하고 싶은거 하면서 놀고 싶기도 했구요. 한마디로 자기합리화하면서 현실도피를 한거였죠.


♣ 백수로 끝난 즐거운 대학생활.


대학생활은 재미있었어요. 학교가 조금 멀긴 했어도 친구들하고 노는 재미에 열심히 다녔어요. 날마다 공연연습이 있긴 했지만 그때는 공연보다 친구들하고 노는게 더 좋았던거 같아요. 친구들 자취방에서 술도 많이 먹었구요. 그렇게 신나게 놀면서 1학년을 보내고 군대에 갔죠. 하지만 복학을 해서는 나름 열심히 했던거 같아요. 졸업작품도 연출도 하구요. 그런데 2년제 대학이 다 그렇듯이 뭔가 조금 알만하니까 졸업이더라구요.


졸업공연 쫑파티가 끝나고 술에서 깨어보니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되어 있는 거예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정말 막막했죠. 그래도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게 춤추고 노래하는 것밖에 없으니 포기하지 말고 도전을 해보자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막상 뭔가 해보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준비된게 없는 거예요. 말만 뮤지컬을 전공했지 제대로 학교생활을 한거는 1년도 채 안되고, 노래, 연기, 춤, 외모, 학벌… 뭐하나 내세울게 없더라구요. 그래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26살의 늦은 나이로 대학입시를 다시 시작했죠.



♣ 26살에 또 다시 도망친 현실.


26살에 다시 입시를 시작했다고 하면 용기가 대단하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것도 자기합리화고 현실도피였어요. 고3 때는 재수할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졸업한 후에는 현장에서 부딪힐 자신이 없어서 도망을 친거죠.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부모님은 절대적인 지지와 지원을 해주셨어요. 장남이 다시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정신차린줄 아시고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늦깍이 수험생치고는 불편함없이 수험생활을 시작했죠.


하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수험생활이 아니다보니 제 생각이나 생활에 달라지는게 없었어요. 가방들고 학원만 왔다갔다했지 절실한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처음으로 연기를 배우거나 무대에 서보는게 아니니까 신기하고 신날 것도 없었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동생들 눈에 연기 좀 해봤다고 거드름 피면서 열심히 안하는 철없는 예비역정도로 보였을거 같아요.


이렇게 나이만 먹었지 고3 때와 똑같이 입시를 준비하니까 결과도 똑같이 나왔어요. 한예종, 수시, 정시 모두 처참하게 떨어진거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부모님이었어요. 다시 입시를 한다고 했을때 기대를 하셨다가 너무 실망을 하신 거죠. 그래서 앞으로는 저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고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하신 거예요. 입시를 준비하는 내내 열심히 안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하셨는데 ‘그래도 저 놈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믿고 계셨나봐요. 그런데 결과가 안좋으니까 끝내 폭발을 하신거죠.


♣ 벼랑 끝에서 시작한 재도전.


군대까지 갔다온 아들놈을 위해 힘들게 지원을 해주셨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고나니 제가 너무 한심했어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장남이라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하는 일은 한번도 반대를 하신 것이 없었어요. 늘 믿어주셨고 부족함없이 지원해 주셨죠. 그런데 그렇게 실망하신 모습을 보니 정말 죄송해서 죽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내 힘으로 다시 한번 도전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꼭 한번만이라도 부모님께 자랑스런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27살에 시작된 두번째 도전은 솔직히 힘들었어요. 아침부터 호텔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고, 수업이 없는 날이나 주말엔 카페에서 발렛파킹을 하면서 학원비를 벌었어요. 알바 끝나고 옷갈아 잆을 시간이 없어서 1년 동안 레스토랑 웨이터 복장에 이름표까지 가슴에 달고 학원을 다녔어요. 처음에는 웨이터 복장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게 부끄럽다는 생각도 했지만 차츰 열심히 사는 제 모습에 스스로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도 새삼 느끼게 되었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일을 하다보니 제에게 하고 싶은 일과 꿈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알바를 두개씩 하다보니 연습이나 입시준비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어요. 사실 이전에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할 일을 미루다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시간이 너무 없다보니 그럴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수업은 절대 빠지지 않았어요. 수업시간에도 못하면 할 시간이 너무 없으니까요. 그리고 잠을 줄였어요. 아침에 일찍어나서 연습을 하고 밤에 잠들기 전에 꼭 대본을 보다가 잠이 들었어요.


제가 원래 부지런하고 규칙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닌데 학원비때문에 어쩔수 없이 알바를 하게 되고, 그 알바 시간과 수업시간에 맞춰 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보니 잡념도 사라지고 연기도 훨씬 안정적으로 되는게 느껴졌어요. 예전에는 늘 불규칙하게 살다보니까 항상 뭘해도 불안하고 연기를 할 때도 뭔가 집중이 잘 안되고 그랬는데 말이에요.


규칙적인 생활은 연기 이외에도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어요. 우선, 부모님과의 신뢰가 조금씩 회복되었다는 것예요. 내색은 안하셨지만 제가 열심히 사는 모습에 부모님은 상당히 흡족해 하셨던거 같아요. 그리고 학원의 동생들한테도 사람 좋은 철없는 예비역의 이미지에서 열심히 살고 배울게 있는 선배의 모습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걸 느꼈어요. 덕분에 저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입시준비할 수 있었고, 결국 서울예대와 국민대에 합격을 하게 되었어요.


♣ 뒤늦게 깨달은 진리.


‘너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말씀처럼 도망치듯 시작한 저의 늦깎이 수험생활은 창대하게 끝이 났죠. 제가 창대하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가 붙은 학교들이 대단해서가 아니예요. 나이가 들어도 절실함이나 절박함을 모르고 철없이 살았던 제가 입시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치열하게 바꼈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실 입시를 준비하면서 알바 때문에 연기에 많은 시간을 쏟지 못했어요. 원래 재능이나 외모가 뛰어났던 사람도 아니구요. 단지, 삶에 대한 제 생각과 태도를 조금 바껐을 뿐이였어요. 그런데 효과는 기대이상이었죠. 어쩌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제가 어리석게도 너무 늦게 알아는지 몰라요. 하지만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늦게라도 깨달은 것이 제가 몇 년의 입시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